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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영웅 홍범도 장군

Life GuruKing

Created on November 2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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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민족의 영웅,홍범도 장군

전설의 영웅, 홍범도 그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어떤 사람인가?

봉건의 한 시대가 저물고 근대라는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는 전환의 공간 조선. 혼란의 틈을 타 누군가는 부정과 손을 잡고 자신만의 안락함을 이어가려 했고, 누군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옳지 않은 것을 바로 잡으려했다.시대는 영웅을 만든다고 했지만 본성이 정의롭지 않았다면 영웅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부패한 군인, 지주, 자본가들에 맞서 싸웠고, 제국주의의 야욕을 꺾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 그가 바로 전설의 영웅 홍범도 장군이다.

1기: 어린 시절 및 청·장년기

1868년 8월 27일 평양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한 머슴의 자식이었다. 국가로부터 혜택은 커녕 태생과 성장과정에서 온갖 핍박을 받아왔다. 하지만, 친일로 특권을 누려 온 자들이 거침없이 조국을 배신할 때, 그는 누구의 지시나 부름도 없이 스스로 의병이 되었다.

+홍범도 일지

남의 근력이 아무리 세면 뭐 하오. 남의 근력이 내 근력이 되는 걸 보았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우리의 힘이오.

2기 - 국내에서의 의병부대 조직과 항일무장투쟁시기

그에게 사격술은 삶을 유지시켜주는 든든한 무기였다.

그는 가난했지만 정의로웠고, 일상의 저항은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신장이 190cm에 이를 만큼 장대했던 그를 사람들은 ‘구척장신의 장군’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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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를 회복하여 자손만대에 행복을 주는 것이 우리 독립군의 목적이요, 민족을 위한 본의다.

3기 -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 등 위대한 장군으로 활약한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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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기 - 연해주·중앙아시아에서의 노후 시기 및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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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장군 관련 보고서 및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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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가지만은 똑똑히 알고 있소.내 땅을 남에게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오.

홍범도 장군 일대기

홍범도 장군에 대한 상세한 일대기는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과 홍범도장군 기념사업회에서 읽어볼 수 있다.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한국독립운동 정보시스템

홍범도의 무력부대 행동에 관한 건

홍범도 부대는 황구령촌의 서북 약 4리 조선인부락(약 20호)에 있는데 한족회 부대의 집합을 기다리며, 병사 수는 휘하에 약 350명, 한족회 140명 내외이다. 그리고 홍범도는 그 후 김좌진의 행동상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재차 간도 방면으로 진출하지 않고 仍頭山 방면으로 향했다고 말하고 있다. 만약 상황이 이를 허락한다면 즉시 삼수, 갑산으로 침입할 결심이라고 한다. 홍범도는 원래 차도선과 함께 장백 무송 방면에 근거를 갖고 있는 관계로, 옛 부하로서 합류하는 자가 적지 않다고.

홍범도 일지

홍범도가 직접 쓴 원본「홍범도 일지」는 러시아 연해주의 한카이 구역에서 작성한 ‘일기’를 희곡 [홍범도]를 쓴 태장춘이 갖고 있었고, ‘일기’의 전반적인 내용은 의병활동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이「홍범도 일지」는 홍범도가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한 후의 시기, 즉 빨라도 1938년 11월 이후의 어느 시점까지만 기록되어 있다.

홍범도 일지는 독립기념관 홈페이지에서 열람이 가능하다.

구척장신의 장군

검게 그을린 얼굴과 부리부리한 눈, 숱이 많은 눈썹과 수염을 가진 그는 항상 군복을 입었고, 총과 작은 수첩을 지니고 다녔다. 총은 군인의 상징이었고, 자신 의 삶을 무장투쟁에 바치겠다는 약속의 징표였다. 수첩은 수없이 많은 전투에서 생사를 달리했던 전우들의 이름이나 전투 현황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전우들을 잊지 않겠다는 그의 마음이었고,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빼앗긴 국권을 되찾고 말겠다는 그의 믿음이었다.

진정한 군인으로 거듭나다.

편히 살아갈 수도 있었겠지만 자유와 평등이 싹 튼 조선에서 주체적이지 못한 삶은 과거의 잔재가 되었다. 청산되지 못한 과거는 부패하고 단죄되지 않는잘못은 반복됨을 그는 알고 있었다.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에게 무참히 살해당했다. 이제는 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분연히 일어나 의병 투쟁을 시작했다. 세 번의 전투는 모두 패했고, 정의감만으로 적을 무찌를 수 없음을 실감한 그는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데 하루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타인에겐 한없이 너그러웠지만 자신에게는 더없이 냉철했다.

‘날으는 홍범도 장군’ 드디어 고국품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국경을 넘었고, 평생을 항일 무장 투쟁으로 살아온 홍범도 장군. 중국이나 연해주에서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언제가는 태어나 자란 내 나라로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면서 조국은 아득히 멀어지고 있었다. 야속한 시간은 그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1943년 10월 25일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 전설의 영웅 홍범도는 서거 78년만에 고국 품으로 돌아온다.

유해 봉환에 맞춰 애국심 고취 및 민족 정체성 함양 등의 공로를 인정해 1등급 훈장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받는다.

홍범도 장군 일지 일부

열다섯 살 때 나팔수로 군인 생활을 하였습니다. 군대에서 사고를 치고 황해도 수안으로 도피하였습니다. 종이 만드는 지소(紙所)에서 3년간 제지(製紙)노동자로 일하였습니다. 악랄한 지소 주인이 임금을 체불하길래 주인을 때려 죽이고 산골로 숨었습니다. 이름을 바꾸고 금강산에서 중노릇을 하였습니다. 여승을 만나 함께 도망하였습니다. 강원도 회양 먹패장골에 들어가 사격연습을 하였습니다. 청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무고한 백성들을 살해하는 것을 보았고,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듣고 산골에서 나왔습니다. 1895년 강원도에서 김수협과 의기투합하여 의병을 조직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일본놈들이 멘 총을 보니 과연 욕심이 나서 못 견디겠습디다. 김수협과 함께 일본군을 습격하고 총을 빼앗았습니다. 의병을 모집했습니다.

하늘을 날으는 장군이라 부를 정도로 신출귀몰한 유격전술로 일본군을 격파

독립전쟁의 금자탑이라 할 수 있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끌며 대외적으로 한민족의 위상을 확인시킨 홍범도 장군은 독립 쟁취를 향해 굽히지 않는 국민적 자존과 결기를 보여줬다. 하지만 전투라는 것이 매번 승리를 안겨주는 것은아니었다. 승리했다 하더라도 함께 싸웠던 동지들의 죽음을 묵묵히 지켜보며 가슴에 묻어야했던 일도 많았다. 그는 군림하지 않는 장군이었다. 먹을 것이 부족하면 부하들에게 먼저 먹였고, 군자금이 필요할 때는 솔선수범하여 노동의 현장으로 향했다. 그래서 부하들은 언제나 그를 아버지처럼 따라다녔다.

홍범도 동향에 관한 보고서 일부

대개는 5~6백명에서 적게는 백여명의 부하를 이끌고 부근 각군을 유린하고 혹은 일진회원을 척살하고 또는 금품을 약탈하는 등 올해 3,4월부터 5,6월에 가장 극심하게 창궐했다. 여러차례 우리 토벌대의 공격을 받아 많은 부하를 잃었지만 패잔한 무리들이 다시 모여 단체를 이뤄 또한 다른 적의 무리들과 힘을 합하여 일대를 이루고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 홍범도, 차도선 부하 각 4,50명과 金正浩 부하 70명을 제외한 외에는 모두 20명 내외의 집단에 불과하다. 그래서 최근 그들 대다수는 산 속에 잠행하고 혹은 산간벽지에 잠복하여 크게 토벌대의 수색을 두려워하고 있다.

비밀 지키려고 스스로 혀를 끊어내” 홍범도 장군 아들·부인,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일본군들은 그의 아내를 볼모로 잡아갔다. 홍범도 장군을 회유해 오라고 온갖 고문으로 그녀를 괴롭혔지만 그녀는 결코 넘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비열한 일본군들을 단호하게 꾸짖었다. 결국 고문 후유증으로 옥사한 그녀는 홍범도 장군의 아내다웠다. 작은 아들 용환도 아버지를 닮긴 마찬가지였다. 어머니와 형이 죽은 후 아버지와 함께 중국으로 향한 용환은 간도참변 때 일본군에 의해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찌되었건 아내와 두 아들 모두를 앞세워 하늘나라로 보낸 그는 외로운 영웅이었다.

사격술의 달인이 되다.

우연한 기회에 얻게 된 화승총 한 자루가 밑천이었다. 수많은 일본군을 쓰러뜨리고 총을 빼앗아 의병들에게 나눠주었다. 모든 물자가 부족했던 독립군들에게 탄약없는 총은 때로는 짐이기도 했지만 그는 총을 소중히 했고, 사격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